2007년 05월 09일
이적 03 나무로 만든 노래
혹시
'나무'라는 말이 '나태하고 무료하다'의 준말인가?
나이 먹어서 온순해진 것도 알겠고 힘빼고 싶은 것도 알겠어.
이젠 자리도 잡혔겠다 좋든 싫든 인정받고 있으니까
굳이 퀭한 눈으로 조소를 흘리며 여기저기 찔러대듯 읊조릴 필요도 없겠지.
어쩌면 당신은 과거에 본인이 그랬던 것을 떠올리면서 지금
무척 창피해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단 생각도 들어.
가사나 멜로디나, 이젠 바짝 긴장 안 하고 편하게 가도 되지 않겠냐고.
뭐 좋아. 좋다고.
어쨌든 선택은 늘 당신이 했고 따라다니기만 했던 나니까
이번에도 역시 뭐, 별 거 있겠어? 따라가주려 했어.
하지만 점점 한계를 드러내는 듯한 멜로디의 빈곤함을
풍요로운 사운드로 감싸서 결국은 쌤쌤이다라고 하는 건
그건 아니잖아, 당신.
당신은 잘 나가다가 때론 어쩔 줄 모르는 아이처럼 얼버무렸고
그걸 통째로 듣는 나는 외려 무안해하며 불안한 수십분을 보내야 했다.
이건, 어딘가 이상하지 않아?
분명 당신은 나의 이상형이었고 나는 누가 뭐래도 당신의 팬이었는데
언젠가부터 나는 기대감 반 불안함 반으로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때로 기괴하고 아름다운 잔혹동화를 쏟아내주던 스토리텔러였고
때로 털이 숭숭 난 혀로 밑바닥을 핥아 적나라하게 보여주던 이인이었으며
때로 마음 속 바다와 산과 강을 액자에 담아 아련하게 펼쳐주던 시인이었던 당신이
이젠 그냥 늙고 지쳐서, 무슨 노래를 해야할지 한참 머리를 긁다가 가끔 한두곡조 하면
나는 그래도 이번엔 뭔가 보여주겠지, 앉아서 지켜보다가
며칠 전 보았던 그 밥에 그 나물인 결과물을 접하면서 좋아해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을 해.
수많은 당신의 (여성) 팬들처럼,
-이번 앨범도 너무 좋아요. 이제까지의 적님 음악 중에서 제일 좋은 듯..
-와우~ 정말 나무 냄새 나는 음악들이네요...
라고 할까.
그냥 다들 좋다고 하는데 나 혼자 반기를 들면 이상한 걸까.
아니면 다들 팬이므로 좋기 때문에, 좋아해야 해서 좋아하는 걸까.
# by | 2007/05/09 22:32 | 털어놓기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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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이 앨범이 최고의 평가를 받고 있으니. 아이러니.